DIAFF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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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디아스포라]: 아파서 다른 몸들

디아스포라영화제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특별 기획 프로젝트

[접속;디아스포라]

 

일상 생활 속에서 쓰고 있는 수많은 단어 속에서 '디아스포라'를 찾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마련한 코너,

생각지도 못했던 단어가 디아스포라의 시선을 통해서 어떻게 풀이되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낯설지만, 이제는 낯설 수 없는 디아스포라를 일상 언어를 통해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쉬운 언어로 써주신 단어 풀이, 정지은 문화평론가가 필자로 함께 합니다.

디아스포라 '단어' 이야기, 함께 읽어 보아요. 

 

접속 디아스포라 : 아파서 다른 몸들

 

 

코로나19 초기, 언론을 떠들썩하게 했던 ‘구로 콜센터 집단감염’ 사례를 기억하실 겁니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밀집된 공간에서 상담을 했다는 환경이 비난받은 이후에야 “상담사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어 상담에 불편함이 있더라도 양해 바란다”라는 안내 멘트가 삽입되었죠. 그러니까 그전에는 코로나19 감염의 위험이 있었는데도 (고객님들의 불편을 방지하기 위해) 상담사들은 마스크를 쓸 수 없었다는 뜻입니다. 당시 언론의 비난 역시 열악한 노동 환경보다는 감염 확산의 원인에 방점이 찍혀 있었지요. 상담사들의 몸은 전염병을 확산시킬 수 있는 위태로운 존재가 되고 난 후에야 겨우, 그것도 아주 잠깐 주목을 받았습니다. 일종의 ‘생물학적 시민권’(biological citizenship)을 획득한 셈인데, 즉 건강한 상담사보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상담사가 시민에 가까워지게 된 것입니다. 참고로 생물학적 시민권은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 사건의 피해자인 시민들이 ‘의학적으로 손상을 입은 자신의 몸을 입증’함으로써 ‘시민의 권리를 부여받는’ 점에 주목한 인류학자 페트리나의 개념입니다.

 

그렇다면 평소에는 어떨까요? 고객 누구나 전화나 채팅으로 쉽게 만날 수 있는 많은 상담사들은 과연 건강한 시민으로 사회의 구성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콜센터 상담은 민원인들을 하루 종일 상대하며 ‘감정노동’을 해야 하는 대표적인 직종입니다. 고객에게 폭언 등 피해를 입었을 경우 업무를 잠시 중단할 수 있게 하는 산업안전보건법이 2018년 생긴 것도 콜센터 상담사로 대표되는 감정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의료인류학자이자 가정의학 전문의인 김관욱 박사는 <바이러스는 넘고 인권은 못 넘는 경계, 콜센터>(창비, 2020)라는 글을 통해 “탈진되고 거칠어진 마음을 달래는 가장 흔한 개인적 해결책은 바로 폭식이었다. 필자가 인터뷰한 상담사 중 8개월 만에 15킬로그램, 1년 만에 15킬로그램이 증가한 이들도 있었다. 이와 같은 체형의 변화는 또다시 자존감 하락으로 연결되었다. 그 최종 결과 스스로를 혐오하고 욕하는 상태까지 이른 경우도 있었다. 고객에게서 시작된 욕설이 상담사의 가족과 주변인으로, 그리고 결국 자신에게로 전파된 셈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감정노동에 지친 콜센터 상담사들이 폭식에 시달려 ‘아픈 몸’을 갖게 되고, 이 폭식의 결과로 체형이 변화되어 ‘다른 몸’이 되는 과정을 거치게 되더라도, 이들의 ‘다른 몸’은 바이러스의 감염 위험에 노출된 몸과는 다른 대접을 받게 됩니다. 한국 사회에서 뚱뚱한 몸은, 그중에서도 여성의 뚱뚱한 몸은 ‘생물학적 시민권’을 획득할 자격이 없다고 치부되기 때문입니다. 뚱뚱한 몸은 그 자체로 웃음거리이자 비난의 대상이 됩니다. 미디어에서 공공연하게 ‘뚱뚱함’을 개그나 비하의 소재로 삼고, 비만인의 다이어트 도전기를 ‘성공 신화’처럼 다뤄서, 저렇게 ‘노오력’하지 않는 사람은 게으르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뒤에 깔린 조용한 배경음악’처럼, 공기처럼 너무 일상적이라 알아채기 힘든 차별은 곳곳에서 아프거나, 아파서 다를 수밖에 없는 몸들을 괴롭힙니다.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라는 연극이 있습니다. 6명의 시민 배우가 공동 창작한 이 연극은 각자의 질병과 함께 살아가며 느끼는 다양한 감정과 여러 문제를 표현합니다, 세상에는 많은 질병이 있고 아픈 사람도 그만큼 많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크고 작은 질병을 피할 수 없는데도, 아픈 몸은 ‘극복’해야 하는 상태이며, 아픈 시간을 인생의 ‘낭비’라고 여겨집니다.

 

아픈 몸들의 공통점은 '배제'당한다는 것입니다. 암 생존자는 회복 중이라고 말해도 취업이 어렵고 “아픈데 집에 있지 왜 일을 하려고 하느냐”는 질문에 부딪힙니다. 근육병이 있는 여성은 사귀는 연인의 부모님에게 골칫덩이가 됩니다. 정신질환이 있는 자식은 친척들 앞에서 부모를 부끄럽게 만드는 존재이므로 집안 경조사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연극을 통해 사회에서, 가정에서, 관계에서 끊임없이 ‘배제’당하는 아픈 몸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어서 반가웠지만, 그만큼 또 씁쓸해지기도 했습니다.

 

건강이 ‘자기관리’의 증표이자 ‘스펙’이 된 사회, ‘정상 체중’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외모중심주의 사회, 고객님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감정노동을 강요하지만 그 감정노동을 수행하다가 아프게 된 몸들에는 관심이 없는 사회가 바로 지금의 한국 사회입니다. 아픈 몸이, 아파서 다를 수밖에 없는 몸들이 점점 늘어나는 지금, ‘잘 아플 권리’, 그러니까 아픈 몸을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삶의 일부로 보듬는 노력에 대해 생각해 볼 때입니다. 

 

 

 

정지은

문화평론가. 디아스포라 영화제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여러 방식으로 함께하고 있음을 기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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