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FF MAGAZINE

DIAFF MAGAZINE

[무비라이브러리] 한국의 향수 어린 풍경 속에서 뿌리를 찾아 떠나는 여정

무비라이브러리

Movie Library

 

자칫 어려워 보일 수 있는 디아스포라 영화를 친근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무비라이브러리가 도와드립니다.


 이번 무비라이브러리에서 세 번째로 선정한 작품은 바로

 

 

영화 <라이스보이 슬립스(Riceboy Sleeps)>, (2022)입니다.​

 

제11회 디아스포라영화제 상영작이기도 한 <라이스보이 슬립스(Riceboy Sleeps)>

무비 라이브러리를 통해 다시 한 번 만나보시죠. 

 

 

 

한국의 향수 어린 풍경 속에서 뿌리를 찾아 떠나는 여정

 

<라이스보이 슬립스>1990년에 소영(최승윤)’이 아들 동현(황도현)’과 단둘이 캐나다로 이민을 오기에 앞서서 한국에서 살아온 삶을 누군가의 내레이션으로 들려주면서 시작된다. 동시에 화면에는 그녀의 삶과 뚜렷한 연관성이 없는 한국의 고즈넉한 산과 바다가 등장한다. 그 풍경 어디에도 소영의 모습은 나오지 않을 뿐만 아니라 특정한 시대의 흔적이 새겨져 있지도 않다. 그녀는 시대를 지워낸 자연 속에서 추상화된다. 나아가, 영화는 16mm 카메라로 촬영하고 동시에 1.33 1의 화면비율을 사용하면서 1990년대를 향수 어리게 재현한다.

 

낯선 이국땅에서 소영과 동현은 캐나다 이민자로서 경제적인 곤경에 처해 있지는 않아 보인다. 그렇다고 그들이 겪는 인종차별이 그리 크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사실, 영화에는 어떤 구조적으로 작동하면서 그들의 일상을 위협하는 인종차별이 가시화되지는 않는다. 주변인들은 대부분 그들을 호의적으로 대한다. 설사 인종차별적인 상황에 처하더라도 소영은 물러서지 않고 맞서 싸운다. 또래 친구들에 라이스 보이라고 놀림을 당한 동현은, 소영의 지시대로 그들에게 무력으로 대응하면서 정학을 당한다. 교장에게 불려 간 소영은 왜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한 학생들은 가만두고 동현만 처벌을 받아야 하냐며 분노한다. 이때에도 교장은 퇴학을 요구하는 학부모를 설득해 정학 처분으로 장계 수위를 낮췄다며 소영을 달랜다. 또한, 공장에서 백인 남성 직원에게 성희롱을 당한 소영은 곧바로 목소리를 높이며 당당하게 그에게 경고를 보내고, 그 직원은 멋쩍게 웃어넘긴다.

 

10대가 된 동현(황이든)’은 머리를 노랗게 염색하고 파란색 콘택트렌즈를 낀다. 이제 그의 절친은 백인 소년이다. 그들은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거나 대마가 든 브라우니를 나눠 먹으며 함께 어울린다. 그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는 무관심해 보인다. 어느 날, 학교에서 가계도를 만들어 오라는 과제를 낸다. 가족의 역사를 아는 것은 곧 나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시도이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동현은 소영에게 아버지에 대해 묻지만 소영은 대답을 회피한다. 정신분열증으로 자살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고아 출신인 그녀는 가계도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에서 의미를 찾기란 쉽지 않을지 모른다. 그녀는 그저 자신의 행복을 유일한 혈육인 동현에게 걸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소영은 한국 입양아 출신의 직장 동료인 사이먼(앤소니 심)’이 청혼을 하자, 동현의 의견을 따르겠다고 한다. 동현은 그런 소영이 부담스러워 반항적인 태도를 보인다.

 

췌장암 4기로 시한부 판정을 받자 소영은 마음이 바뀐다. 가족은 나를 곁에서 지켜주는 존재일 뿐만 아니라 나의 의미에 깊이를 더해주는 상징적 존재이기도 하다. 그녀는 자신이 부재한 미래에 동현이 심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또 다른 혈연 가족을 찾아 한국으로 향한다. 그것은 한국에서 외국으로 입양된 이가 뒤늦게 생모를 찾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는 특수한 상황과는 다르다. 대신, 자신의 뿌리를 찾고자 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의 층위에서 작동한다. 그들은 동현 아버지의 고향이 있는 시골 마을에서 농사를 짓는 조부모와 작은 아버지를 만난다. 동현은 비로소 자신의 뿌리와 대면한다. 영화 속에서 한국은 고도성장을 대변하는 도시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푸른 산과 노란 들판의 향수 어린 풍경으로만 재현된다. 할아버지는 소영과 동현을 데리고 벼가 익어가는 볏논 사이를 거닌다. 그것은 시대를 초월한 고향의 이미지로 첫 번째 풍경 시퀀스와 공명한다. 소영의 고향도, 동현의 고향도, 그리고 아버지의 고향까지도 모두 저 자연의 초시대적 경치 속으로 녹아든다.

 

할아버지는 떠나는 그들에게 동현 아버지의 유품을 안긴다. 거기에서 동현은 아버지가 입던 야전상의를 입으며 아버지의 체취를 느끼고, 목욕탕에서 작은 아버지의 등을 밀며 부성애를 체험한다. 그리고 이발소를 찾아가 노랗게 염색한 머리카락을 밀어버리고, 목욕탕에서 잃어버린 콘택트렌즈를 대신해서 안경을 쓴다. 어느새, 동현은 아버지의 옷을 입은 전형적인 한국인 소년의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그러고는 소영과 함께 산을 올라가 아버지의 묘소 앞에서 절을 한다. 산길을 내려오는 그들의 마지막 모습은 익스트림 롱숏으로 촬영되면서 웅장한 산의 위용이 화면에 펼쳐진다. 이처럼 영화는 마지막까지 한국/고향을 향수 어리고 자연친화적인 이미지로 제시한다. 자연의 품 안에서 가계도를 낭만화하며 혈연 중심의 가족을 향한 보수성을 희석시킨다. 가족의 역사를 돌아보는 것은 비단 디아스포라에게만 유의미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자신의 이해를 확장하는 과정으로 승화된다. (김경태)

 

 

김경태

연세대학교 강사. 중앙대학교 영상예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논문으로 『친밀한 유토피아: 한국 남성 동성애 영화가 욕망하는 관계성』을 썼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객원연구원, 부산국제영화제 지석영화연구소에서 전임연구원으로 근무했다.​  

 


 

CopyRight Since 2016-2023 DIAFF.ORG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