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FF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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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라이브러리] <사마에게>: 아이의 얼굴을 한 알레포를 지키기 위한 저항

무비라이브러리

Movie Library

 

자칫 어려워 보일 수 있는 디아스포라 영화를 친근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무비라이브러리가 도와드립니다.


 이번 무비라이브러리에서 다섯 번째로 선정한 작품은 바로 

 

영화 <사마에게(For Sama)>, (2019)입니다.​

내전의 과거와 현재를 사실적으로 기록한 영화 <사마에게>,

무비 라이브러리를 통해 함께 보시죠! 

 

 

아이의 얼굴을 한 알레포를 지키기 위한 저항 

 

2011년 시리아에서는 알아사드 독재 정권에 맞서 민주화를 염원하며 일어난 반정부 시위를 정부가 무력으로 탄압하면서 정부군과 반군 사이의 내전이 촉발되었다. 특히, 반군이 점령한 최대 도시인 알레포는 정부군을 비롯해 동맹을 맺은 러시아군의 지속적인 공습으로 수많은 사상자와 피란민을 발생시켰다. 다큐멘터리 <사마에게>(2019)의 감독이기도 한 저널리스트 ‘와드’는 남편인 의사 ‘함자’, 그리고 갓 태어난 딸 ‘사마’와 함께 정부군에 포위된 알레포를 최후까지 지킨다. 전장의 한 가운데에서도 가족의 삶은 계속된다. 와드는 포탄으로 죽은 아이의 먼지 덮인 얼굴부터 해맑게 웃는 사마의 얼굴까지, 전쟁과 일상이 맞물린 삶을 카메라로 치열하게 기록한다. 내전의 참상과 사마의 성장 과정을 촬영한 영상 위로 당시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긴 내레이션이 겹쳐진다. 

영화는 관객의 이해를 돕는 내전의 경과가 아니라 감독의 10년 전 모습이 담긴 사진과 자기  소개로 시작한다. 감독은 알레포 출신이 아니지만 알레포 대학교 재학시절부터 알아사드 정권의 독재 반대 시위에 참여해왔다. 와드와 함자는 함께 투쟁하는 친구로서 처음 만났다. 정부군에 의해 포위되어 공습에 시달리는 알레포에 남아서 각자의 방식으로 저항했다. 함자는 공습으로 다친 사람들을 치료해줬고, 와드는 그 과정을 생생하게 카메라에 담았다. 나아가 그들은 사람들이 죽거나 떠나버리는 도시에서 사마를 낳았다. 알레포가 살만하기 때문에 아이를 낳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통해서 살만한 곳이 된다. 딸을 처음 마주한 와드는 죽은 이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사마는 죽은 이들의 빈자리를 채우며 알레포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와드는 내전의 참상을 카메라에 담아야만 하는 저널리스트이자 자신의 아이를 그 위협으로부터 보호해야만 하는 어머니이다. 그는 두 가지 소명에 모두 충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어쩔 수 없이 두 역할은 상충하곤 한다. 알레포를 지키는 것과 떠나는 것 중 무엇이 진정으로 딸을 위한 선택인지 끊임없이 갈등한다. 저널리스트로서의 냉철함은 아이의 얼굴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지곤 한다. 이곳을 지켜야 하는 명분도 사마 때문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정말 딸을 지키고 싶다면, 부모로서의 최선의 선택을 하고 싶다면 하루빨리 그곳에서 도망치라고 종용할지도 모른다. 혹은 저널리스트로서의 공명심 때문에 딸을 희생양으로 삼지 말라고 비난할 수도 있다. 애초에 이 위험한 곳에서 아이를 낳은 것은 부모가 되려는 욕심에서 비롯된 무책임한 행동은 아니었을지 반문한다. 와드는 딸에게 이런 곳에 태어나게 한 잘못에 대한 용서를 빈다. 이처럼 <사마에게>의 긴장감은 하나를 위해 다른 하나를 쉬이 포기할 수 없는 곤란한 상황과 복합적 정체성으로부터 기인한다. 

폭격의 굉음과 비명 소리로 가득한 죽음의 공간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탄생하는 새 생명들로 활기를 불어넣는 것만큼 상징적인 저항이 있을까. 출산은 미래가 불투명한 죽음의 도시에 삶의 희망을 불어넣기 위한 저항 행위가 된다. 미래는 아이의 것이고, 아이는 미래를 상장하기 때문이다. 아이의 맑은 얼굴은 그 자체로 희망어린 미래의 가능성을 환기한다. 아이는 미래를 위해 현재의 불의에 맞서 싸워야 할 강력한 정서적 근거가 된다. 이로써 영화는 무고한 민간인들의 끔찍한 죽음이 일으키는 전쟁에 대한 분노를 넘어 아이의 얼굴을 한 미래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전쟁은 피란민이라는 이름의 디아스포라를 불가피하게 양산해낸다. 그런데 와드에게 있어 알레포를 버리고 정부군 영토로 떠나는 이들은 최악의 본보기로 보인다. 도망치는 건 부당한 정부에 굴복하는 비겁하고 이기적인 행동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알레포의 재력가들은 일찌감치 외국으로 떠났다. 알레포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웃 아이는 알레포가 포위 된 것보다 친구들이 떠나서 슬프다고 말한다. 와드의 말대로, 알레포를 지키는 이웃들은 운명 공동체이다. 쏟아지는 포탄 속에서도 견딜 수 있는 것은 서로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죽음의 공포를 공유하며 악몽 같은 순간들을 버텨낸다. 공습을 피해 함께 몸을 숨긴 방공호에서도 담소를 나누며 웃음을 잃지 않는다. 알레포를 지킨다는 건, 소중한 이웃을 지키는 것과 다름없다.

와드는 두 번째 임신을 한다. 그러나 정부군의 최후통첩을 받은 남은 이들은 이제 알레포를 떠나야만 한다. 와드는 가족과의 추억이 스며있는 집을 둘러보며 눈물을 흘린다. 그들은 무사히 검문을 통과해서 알레포를 탈출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와드는 다시 알레포로 돌아온다. 사마를 품에 안은 와드는 인적 없이 폐허가 된 도심을 당당하게 걷는다. 그의 걸음은 적막한 도시에 미약하나마 온기를 부여하며 미래를 기약한다.

김경태
연세대학교 강사. 중앙대학교 영상예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논문으로 『친밀한 유토피아: 한국 남성 동성애 영화가 욕망하는 관계성』을 썼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객원연구원, 부산국제영화제 지석영화연구소에서 전임연구원으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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