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FF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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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라이브러리] 살아남은 자의 미안함

관객 여러분이 영화뿐만 아니라 폭넓은 문화예술 장르 안에서

‘디아스포라’를 이해하실 수 있도록 '디아스포라' 관련 도서들을 소개해드리는 코너!

 

2024 디아라이브러리

2024 DIA library

 

올해도 '디아스포라'를 다방면으로 연구해오신 ​이종찬 선생님께서 필자로 함께합니다.

 

어렵기도 하지만, 결코 우리와 멀리 있지 않은 ‘디아스포라’를

보다 쉽고 편안하게, 마치 가까운 지인에게 띄우는 짧은 편지글과 같은 느낌으로 소개해주신

 

올해의 두번째 추천도서는

『미안함에 대하여』 (홍세화 지음, 한겨레출판, 2020) 입니다.

 

 

 


살아남은 자의 미안함

 

돌아보니 어느 글에선가 20년 동안의 난민생활을 접고 귀국한 뒤 내 정서를 지배하는 것은 분노보다는 슬픔, 슬픔보다는 쓸쓸함이라고 쓴 적이 있다. 세월호는 거기에 미안함을 얹게 했다. 아니, 내 안에는 세월호 훨씬 이전부터 살아남은 자의 미안함이 있었다. (...) 이를테면 나의 미안함은, 요행으로 살아남은 내가 그 요행이 없었더라면 살아남지 못했을 나에게 느끼는 미안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른 사람 아닌 나부터 챙긴다는 점에서 이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만큼 절실하다고도 말할 수 있다. 몰상식과 광신의 늪에서 성소수자들이 겪는 고통이, 이 땅에 와 있는 난민들, 이주노동자들의 고난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6~8쪽; 강조는 인용자)

직전 디아-라이브러리 연재 글에서 서경식 선생의 유작 『나의 미국 인문 기행』을 소개하려 했으나 그 글은 끝내 서평이 되지 못한 채 다만 추도문이 될 수밖에 없었다. 글을 쓰는 나 자신의 마음이 아직도, 여전히 상중(喪中)에 있었던 탓이다. 당시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먼저 간단히 끝맺음 짓고 난 뒤 오늘의 글로 넘어 가보고자 한다. 

 

도널드 트럼프 시대의 음울한 미국을 목도하고 있었음에도 서경식 선생은 『나의 미국 인문 기행』에서 ‘선한 아메리카’의 면모 또한 잊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선생의 이러한 태도에는 당신의 개인사적 배경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짐작하게 된다. 박정희 군부독재 치하의 한국에서 ‘재일조선인 간첩 조작 사건’에 연루된 두 형 서승, 서준식이 기약 없는 옥살이를 하고 있던 1980년대 당시, 서경식 선생은 형들의 구명운동을 위해 미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나의 미국 인문 기행』에는 그때 선생이 미국에서 만난 ‘선한 아메리카인’에 대한 기억들이 인상적으로 서술되어 있는데, 미국에 영주하는 재일조선인 여성 B도 그 중 하나였다. 오랜 시간이 흐른 2016년, 다시 찾은 미국의 시카고 미술관에서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나이트 호크스>(1942)와 마주 대면했을 때 선생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불현듯 B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낸다. 

 

서경식 선생보다 두세 살 연상이었던 B는 같은 간사이 지방 출신의 재일조선인으로, 미국에서 결혼했지만 이혼 후 홀로 사춘기 아들을 키우며 사는 싱글맘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형들의 구명운동과 관련한 도움을 받기 위해 만난 B에게서 선생은 어느 순간 외로움을 엿보게 된다. 미국 이민자들은 일반적으로 출신국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커뮤니티에 몸을 담고 자신의 사회적 관계망을 유지해나가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선생은 외견상 일본인 커뮤니티에 별 문제 없이 잘 속해 있는 B에게서 역설적이게도 어디에도 속하기 어려웠을 어려움을 포착해낸다. 엄밀히 말해 그녀는 일본인이 아니라 재일조선인이었기 때문이다. 선생 자신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미국에서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가는 날, 마중을 나온 B는 비행기에서 먹으라며 선생에게 삶은 달걀 대여섯 개를 건네준다. 언젠가 선생은 그에게 삶은 달걀을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묘하게도 나에게 이 삶은 달걀은 마치 ‘선한 아메리카’를 가리키는 대체불가능한 상징과도 같이 느껴진다. 

 

1970년 즈음 한국에서 정치범(간첩)으로 수감된 두 형의 끝을 알 수 없는 옥바라지를 하던 어머니와 아버지가 각각 1980년과 1983년 암으로 세상을 떠난 뒤, 홀로 남겨진 서경식 선생의 마음을 차지하고 있던 주된 정서 또한 미안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살아남은 자의 미안함’. 일본에서 학부 과정을 모두 마치고 나면 자신도 두 형처럼 모국(母國)인 한국으로 들어가 활동할 계획을 갖고 있었던 선생에게 형들이 맞닥뜨려야만 했던 저 가혹한 운명은 곧 자신의 일이 될 수도 있었다. 어쩌면 겨우 한끝 차이로 자신은 두 형과 달리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작년 12월 18일 서경식 선생의 타계에 이어 지난 4월 18일, 홍세화 선생의 역시나 때 이른 부고 소식을 전해 듣고 2020년 출간된 책 『미안함에 대하여』를 읽어 내려갔다. 선생의 여러 저서들 중에서도 굳이 이 책을 택한 개인적인 이유가 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홍세화 선생이 6년 여 동안 <한겨레>에 발표한 칼럼 모음집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2013년 선생이 발족한 학습공동체 협동조합 ‘가장자리’에서 조합원으로 활동하며 2년 여 동안 비교적 멀지 않은 거리에서 선생과 함께 했던 기억을 갖고 있는데, 이 책 『미안함에 대하여』를 통해 내가 가까이서 뵙지 못한 2016년 이후부터 비교적 최근까지 선생의 모습을 선생이 직접 쓴 글들을 통해 개략적이나마 정리하고 싶었다. 

 

그동안 띄엄띄엄 접했던 선생의 칼럼들을 시간 순으로 한 번에 내처 몰아 읽었다. 그리고 작년 1월 마지막 칼럼 글까지 독파하고 난 후 나는 독서노트에 다음과 같은 취지의 메모를 남겨 두었다. 홍세화 선생이 ‘진보’ 지식인으로 단순히 말하는 것을 넘어 살아낸 덕분에 한국 사회의 ‘왼쪽’의 정치적 좌표는 그만큼 넓고 깊어진 것이 아닐까, 라고. 선생은 당신의 마지막 칼럼에서 “진보나 좌파를 말하는 것과 진보나 좌파로 사는 것은 다르다.”라고 눈 밝게 통찰했는데, 나의 메모는 선생의 바로 이 문장에 대한 내 나름의 응답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사회의 변두리는 어디이고 중심은 어디일까? 나는 중심은 오로지 하나의 점일 뿐이고, 가장자리는 변방의 점들이 연대한 선이라고 본다. (...) 실상 사회의 모순이 첨예하게 드러나고 인간의 고통과 불행이 불거지는 곳은 중심이 아니라 변방이다. (146쪽)

선생은 2011년 명망가 진보 정치인들이 모두 떠난 진보신당을 지켜내려는 목적으로 당대표 직을 기어이 맡아 “오르고 싶지 않은 무대에 오르며” 분투했지만, 당은 이듬해 총선에서 2% 미만이라는 저조한 득표를 얻으며 최종적으로 등록 취소됐다. 그 직후 선생 주도로 만든 조직이 학습공동체 ‘가장자리’였다는 사실은 꽤나 의미심장해 보인다. 자기 자신을 포함하여 진보 진영의 학습 필요성을 역설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실상 하나의 점에 불과한 ‘중심’ 대신에 변방의 점들이 연대한 선을 만들겠다는 뜻을 품고 닻을 띄운 ‘가장자리’ 공간이 그러나 내부 문제로 와해되었을 때, 공식적인 자리에서든 사적인 술자리에서든 나는 단 한 번도 선생이 내부의 특정 구성원을 비난하거나 탓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하다못해 원망하는 기색도 비치지 않았던 것으로 나는 기억한다. 선생은 자기 자신부터 반성하고 성찰하는 타잎의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렇지 않았다면 다만 분노의 단계에 머물지 않았을까. 하지만 선생은 분노를 지나 슬픔, 그리고 쓸쓸함의 정서를 거친 뒤 미안함에 가 닿았다. 성소수자들의 고통이, 그리고 이 땅에 와 있는 난민과 이주노동자 들의 고난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왜 미안함은 미안하지 않아도 될 사람들의 몫이 되는 것일까.

 

생사의 와중에 선생이 힘겹게 마지막으로 육필로 남긴 단어는 ‘겸손’이었다. 분노, 슬픔, 쓸쓸함, 미안함, 그리고 겸손에 대하여 잘 기억해두려 한다. 한 사람의 지식인을 잃었다는 사실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한 사람의 어른을 떠나보냈다는 사실이 나로서는 더더욱 뼈아프게 다가온다. 

 

마음을 담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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