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FF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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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라이브러리] 재일조선인의 증언을 필름에 아로새기는 기록에의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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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 어려워 보일 수 있는 디아스포라 영화를 친근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무비라이브러리가 도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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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첫번째 무비라이브러리에서 선정한 작품은 바로
제12회 디아스포라영화제 화제작이었던
박수남, 박마의 감독님의 <되살아나는 목소리>(2024)입니다.
<되살아나는 목소리> - 재일조선인의 증언을 필름에 아로새기는 기록에의 의지
<되살아나는 목소리>는 재일조선인 2세인 ‘박수남’과 그의 딸 ‘박마의’가 공동 연출한 다큐멘터리이다. 1980년대부터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활동해 온 박수남은 그동안 일제강점기에 조선인들이 겪었던 원폭 피해와 강제노역, 위안부의 실상을 피해자들의 증언을 통해 밝히는 다큐멘터리인 <또 하나의 히로시마>(1986), <아리랑의 노래-오키나와의 증언>(1991), <누치가후-옥쇄장으로부터의 증언>(2012), <침묵>(2016) 등을 연출했다. 그런데 그의 집에는 아직 작품화되지 못한 10만 피트에 달하는 약 50시간 분량의 16mm 필름이 쌓여있다. 이제는 열화되어 확인조차 쉽지 않은 필름의 디지털 복원을 결정하면서 <되살아나는 목소리>의 여정은 시작된다.
영화는 카메라 앞에 선 박수남의 인터뷰와 복원한 영상 속 피해자들의 증언을 교차하며 보여준다. 그것은 재일조선인으로서 박수남 개인의 내밀한 회고록이자 일제강점기하에서 핍박받았던 조선인의 역사에 대한 공적 기록이라는 양가적 형식을 포용하며, 서사적 일관성을 염두에 두기보다는 두서없는 기억의 흐름을 좇는 듯하다. 다시 말해, 이야기를 추동하는 것은 복원된 영상과 음성이 끄집어내는 기억의 조각들이다.
그 시발점은 1958년 재일조선인 이진우가 일본인 여고생을 살해한 고마가쓰와 사건이다. 당시 조선총련 기자로 활동했던 박수남은 사형선고를 받은 이진우의 감형 운동에 동참하며 서신과 면회를 통해 그와 교류한다. 이를 통해 재일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의 의미에 대해 보다 깊이 천착한다. 결국 이진우의 사형 집행이 진행되면서 박수남은 운영하던 식당을 접고 녹음기를 들고서 히로시마에서 피폭된 조선인들과 지쿠호 탄광에 강제 동원된 조선인들을 찾아가 인터뷰를 시도한다. 녹음기가 피해자들의 ‘몸의 떨림’ 같은 비언어적 증언까지 담아내지 못하는 한계를 마주하고 카메라를 손에 든다.
따라서 박수남이 다큐멘터리를 만들게 된 계기는 기록으로 남기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이다. 영상의 형식을 취한 것은 그것이 음성의 형식보다 훨씬 더 자세하게 기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수남은 “사실로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체험을 기록하는 것이 역사의 진실”이라고 말한다. 나아가 “내가 카메라야”라고 덧붙인다. 그가 다큐멘터리를 대하는 태도가 단적으로 드러난다. 다큐멘터리 감독의 시선은 카메라의 렌즈와 다름없다. 필름은 감독의 유한한 기억을 보완하는 저장 장치다.
그러니까 박수남이 그 수많은 피해자의 체험을 기록으로 남기는 궁극적 목표는 온몸으로 증언하는 그들의 모습을 필름에 영구히 아로새기는 것이다. 그들이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더라도 그들이 피해자였다는 사실마저 사라지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박수남의 말대로, 피해자들의 기억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가해자들은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 무엇보다도, 다큐멘터리는 그 피해자들의 증언을 영속화하기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 편집을 거쳐 형식을 갖춘 한 편의 영화로 완성되는 것보다 일단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더 시급하다. 어쩌면, 작품화되지 못한 채 쌓여 있는 필름들은 일차적 소임을 다한 것일지 모른다.
김경태
연세대학교 강사. 중앙대학교 영상예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논문으로 『친밀한 유토피아: 한국 남성 동성애 영화가 욕망하는 관계성』을 썼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객원연구원, 부산국제영화제 지석영화연구소에서 전임연구원으로 근무했다.
